무상급식. 이 화제는 논란을 일으키며 지금도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입니다. 그 복잡한 이야기를 다 알진 못합니다만 한 가지, ‘결식아를 위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정치적 포지션을 결정한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놀라운 사실을 두고, 한 낱말을 떠올렸고 한 소설을 꺼내 읽었습니다.
그 낱말은 ‘일상’이란 이상한 말입니다. 모든 말들은 상황과 맥락에서 다양한 모습의 생명을 얻기 마련이니 이 낱말이 이상할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란 사전의 뜻만 가지고 간다고 해도 이 낱말은 이상합니다. 이는 ‘반복’이라는 말이 주는 리듬과 예측가능성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생활’이란 말이 담고 있는 모호함과 비밀스러움이 서로 절름거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 포스트로 오늘 저와 만난 여러분의 일상은 어떠신지요. 저는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일하는 여성으로서, (스승님께 구박12종세트를 다양하게 먹어가며 아주 느리게 ㅠㅗㅜ)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그 역할 아래 빼곡히 들어찬 요모조모 크고 작은 일정들로 일상을 채우고 있습니다. 다만 요즘 블로그를 하면서 그 일상에는 끼니를 거르는 것이 ‘일상’인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제 일상의 부분이 되었지요. 그러면서 처음의 낭창했던 생각과 계획이 많이 어긋나며 조금 주눅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꺼내든 책이 송기원의 [아름다운 얼굴]이었습니다. ‘쉰 가까운 나이’의 주인공이 회상한 어린 시절은 전후의 폐허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는 하층민들의 마을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소재는 얄짤없는 가정폭력입니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어린 나이였던 주인공은 출감한 생부를 길에서 만나 얼떨결에 색 고운 양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에게서 무참하게 두들겨 맞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무려 부지깽이로 때려 부수려는 대상이 자기가 아니라 자기 안에 깃든 생부의 모습임을 어렴풋이 깨닫지요.
그의 어머니는 전후에 억척스런 고난의 삶을 살아나가야 했던 여성들 중 한 명입니다. 그와 11살 나이차가 나는 누이를 낳은 후 인연이 다한 첫 번째 남편, 생활력 있는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아편과 노름으로 그녀의 재산을 한꺼번에 날린 두 번째 남편 –주인공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현재 주인공의 의부인 세 번째 남편을 그녀는 사는 동안 견뎌야 했지요. 의부는 원래 건어물도산업을 하면서 주인공의 어머니, 그리고 누나, 주인공을 굶주림의 공포로부터 구제해주지만 훗날 사업이 망해 어머니는 시장바닥에서 장돌뱅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장돌뱅이 치고는 특이하게도 아들을 고등학교에도 보내고 대학교에도 보냅니다. 주인공은 ‘못 배운 험한 인생’인 어머니에게는 유일하게 바라볼 수 있는 꿈이었던 셈입니다.
소설에서 주인공을 잡아내리는 거대한 인력은 과거입니다. 굶주림과 가난, 폭력과 장돌뱅이의 아들, 사생아와 어려서부터 환영받지 못한 존재 등의 요소가 이리저리 얽혀 있는 과거로 인해, 주인공은 고등학교 또래들의 안온하고 평범한 생활에 스며들지 못합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혐오합니다. 심지어 졸업앨범의 자기 얼굴을 면도칼로 죽죽 그어버리지요. 한편 이 즈음에서 요 음울한 주인공의 매력이 드러나는데, 그 매력은 그런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의 괴로움은 무슨 무슨 연주회 독주회 포스터가 빼곡한 샤방샤방한 세계에 섞여 들어가려니 본인의 구성성분인 그 ‘과거’를, 장바닥에서 굴러다니며 형성했기에 오히려 더 강하게 옹이질 수 있었던, 자유롭고 낙천적인 힘마저 만들어주는, 어떤 의미에서는 건강한 과거를 부정하고 숨겨야 하는 데서 흘러내립니다. 주인공은 시쳇말로 쬼 ‘깡’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이기에 그런 과거를 어떻게 삶의 표지로 만들어나갈지, 그 부조리함을 어떻게 바로잡아 갈지 몰라 방황합니다.
그 와중에 그를 구원한 것은 문학입니다. 탁, 하는 깨달음으로 그를 한 방에 진득하고 음습한 과거의 늪에서 쇽, 꺼내준 것은 아닙니다. 천사처럼 강림하사 “당신의 상처투성이 과거는 미래의 재산이예요오오오~, 아프니까 청춘이다요오오오~” 따위 맹랑한 말을 지껄인 것도 아니구요. 다만 그는 문학작품을 읽으며 본인의 위악과 문학 속의 위선, 그리고 자신을 은폐하는 법을 알고 희열을 느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어설픈 시간은 깊어져 오랜 시간 주인공을 졸이고 달이며 성숙의 길로 이끌지요. 그 길은 주인공이 예뻐라 하는 한 노동운동가 ‘후배’에게 이어져 있습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던 후배는 그 과거를 어떻게 살아가는 에너지로 변환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어느 밤의 술자리에서 그에게 고백을 합니다. “네 얼굴이야 말로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것.” 그리고 자기에 대한 깊은 혐오감이야 말로 자신을 구원할 아름다움의 원천임을, 이 괴상한 논리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사춘기 때부터 예감해온 이 깨달음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작가는 소설 첫머리부터 이 내용을 숨김없이 적어두지요.
일단 여기까지 제 읽기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아름다움의 자양이 될만한 과거를 되짚어 보기 시작했지요. 이 작업은 작년 이 즈음 제 스승님이 권해준 것이기도 합니다. 하다가 유야무야 된 것을 이제 다시 이어가게 되었네요(스승님 그때 이거 다했다고 뻥때려서 죄송해요 ㅠㅠ) 그리고 ‘문학소녀코스프레하는어느아줌마의한가한끄적임이랄깡?’ 컨셉의 이 글을 하필 ‘밥 못 먹는 아이들-이야기’ 카테고리에 넣은 이유는……
없습니다. 잘 살진 못했지만 제 과거에 굶어본 기억은 없습니다. 다만 그리 집안 사정이 순하질 않았고, 제 성격도 원만한 편이 아니라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항상 세상이 두렵습니다. 세상은 저로 인해 상처받고 세상은 그런 제게 보복합니다. 언제나 아웃사이더이며 언제나 소외되어 있다는 이 자학 혹은 누추한 자기애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고 너무나 지난하여 여기에 적는 누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런 소외감의 원천이 적어도. 적어도 적어도 적어도 적어도 ‘밥 굶기’ 때문은 되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이런 소박한 마음입니다. 이런 소박한 마음이 정치적인 틀에 휘말려 무상급식의 대항마로 쓰였단 것이 속상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저와 저의 배고픈 친구들이 그 틀 속에서 외로워지는 것이 슬픕니다. 정치적 편가름에서 제가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어떤 편으로 분류 당해 한쪽의 외면과 한쪽의 환영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참담합니다. 이 문제는 그저 인간의 문제이기에 정치적이지 않고, 인간이 해결할 문제이기에 정치적일 뿐일텐데요.
희망합니다. 이 친구들의 문제만큼은 진보니 보수니 어떤 당이니 그런 입장에 따라 판단되지 않기를, 제한된 돈, 제한된 밥그릇이라면 이 친구들에게 먼저 그 몫이 돌아가기를, 이 모든 것이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져 어린 국민의 당당한 권리로 존심 상하는 일이 없기를.



덧글
net진보 2011/10/13 18:58 # 답글
아름다운운얼굴...누구나 아름다운얼굴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문제는 예산이겠지만요.
몽몽이 2011/10/13 23:26 # 답글
이미 결식아동 지원은 하고 있습니다.결식아동 지원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얼굴들을
갑자기 위화감이라는 억지 가면을 씌우는 이들이 있어서 문제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