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유로 블로그를 쉬었습니다. 제 스승은 제가 글을 올릴 때까지 대기상태로 기다려주셨지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게으른 열정’에 사로잡힌 것도 모자라, 제게 1,2월은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튀밥마냥 펑펑 터져 올라오는 다이내믹한 시기였답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이 가라앉고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이 블로그에서 저는 새로운 모험을 하려고 합니다.
기화당은 두 사람이 글을 씁니다. 저와 저의 스승님. 제가 맡은 부분은 랩과 안무...는 아니고 제 개인적인 공부이야기와 결식아동에 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저는 한 가지 일을 더 벌이려고 합니다. 바로 중고등학생을 위한 ‘수능 언어영역 참고서’ 집필입니다. 처음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기화당에서 시도한, 결식아동들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학교의 수업으로는 뭔가가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언어에 관한 도움말을 적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아이들이 이 무명에 가까운 블로그를 방문해 능동적으로 학습을 할 것인가, 집필자인 제가 도움되는 내용을 쏙쏙 잘 게재할 것인가 등등의 문제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점점 결식아동들과 시사에 대한 이야기자리로 굳어가는 기화당 이미지에 엉뚱한 인상을 주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구요. 하지만 스승님과 의논한 끝에, 일을 더 키우기로 했습니다. 아예 교재로 출판을 해보기로 한 것이지요. 그리고 블로그 한 켠을 터서, 그 집필 과정을 생중계할 것을 마음 먹었습니다.
이 글은 그 계획의 첫 글입니다. (저그..이제부터가 본론이어라...원래 지가 서론이 좀 길구만유...-ㅂ-) 여기서 저는 앞으로의 일정을 정돈해보려 합니다. 일정은 이렇습니다 : 자료분석 – 서문쓰기 – 개요작성 – 집필 – 퇴고 – 출판. 각각의 일정에 대한 러프스케치는 아래와 같구요.
1. 자료분석
- 기출문제 : 수능, 교육과정평가원, 전국연합
- 중고등 언어관련 검정교과서(국어, 문학, 문법, 작문 등등)
- 기존 참고서 : 문학개념어와 논리적해석, 언어의 기술 시리즈, 언어스캔들 시리즈, 마스터K의 언어영역 마스터키, 언어영역 내 눈에 정답만 보이게 해줄게
- 배경지식을 위한 책 : 한국문학통사, 문학이란 무엇인가(유종호), 문학이론 입문(테리 이글턴), 현대시작법, 시교육의 이론과 방법
- 편집체계 참고를 위한 책 : 나의 빈칸책, 청춘 매뉴얼 제작소
2. 서문쓰기
기존 참고서의 장단점 언급 – 책을 쓰게 된 동기 – 책의 특징
3. 개요
3.1 언어영 문제의 구성 : 독해(지문 – 문두 – (<보기>) – 선택지)
3.1.1 지문 독해의 방법 (구조파악 → 주제파악 / 구조와 주제로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 유형 제시 / 연상과 유추 / 낱말뜻 )
3.1.2 문두 독해의 방법 (지시사항을 정확히 파악 → 정답 선택의 열쇠 마련)
3.1.3 선택지 독해의 방법(용어에 대한 설명과 적용 예시 /인과적 사고 / 선택지의 패턴)
3.2 문법(독해와 문법문제풀이에 필요한 배경지식으로서의)
3.2.1 음운
3.2.2 형태소와 단어
3.2.3 문장
3.3 배경지식
3.3.1 간략한 문학이론
3.3.2 비문학을 위한 필수 주제별 배경지식
3.4 참고도서 목록
3.4.1 문학 관련
3.4.2 비문학 관련
4. 집필
5. 퇴고
6. 출판
물론 책을 통해 제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당장은 아이들이 치를 중요한 시험을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지만 좀더 나아가 평생 그들의 자양분이 될 각종 텍스트들을 정확히 읽어내고 비평할 수 있는 기초자산을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공부의 과정에서 아이들이 단순히 문제를 풀어나가며 동그라미와 가위에 희비가 엇갈리는 시간을 갖는 것 외에도, 시험지에 인쇄된 '다음 글'을 읽으며 자기 자신과 만나고 인식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지적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적고 나니 참으로 상투적이지만 이것이 진심이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네요.
앞에 암호처럼 늘어놓은 일의 순서가 제겐 그대로 집필 일정입니다. 기왕이면 항목별로 달성날짜, 예상시간까지 뙇뙇 적어놓으면 좋으련만, 일하고 애 키워가며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 하기에 일단 ‘되는 대로 얼른얼른’을 최우선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스승님이 미진한 부분을 멘토링해주시기로 하셨구요. 우리 스승님이 욱하는 승질이 좀 그래서 그렇지 알고 보면 그런그런 점이 있는 그런 분이시지요, 데헷~.
또한 3번 항목에 개요라고 적어놓은, 책의 목차가 될 저 내용들은 제가 자료를 익히고 배우는 과정에서 계속 수정이 될 것입니다. 실은 두근두근합니다. 과연 최종적인 목차는 어떤 모습일 것인 것 후후후...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좌초의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일단 막 달리기로 했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에라이 몰라요. 이제 아침밥하러 갑니다. 좋은 하루.
- 2012/02/22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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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0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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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27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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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어떤 마을에~, 으레 이런 상투적인 말로 시작하곤 하는, 파스텔톤 샤바라바랑 동화들이 실제로는 잔혹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설화가 형성되던 시기의 중세는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 전쟁과 질병으로 인한 재난, 자아개념의 부재 등으로 상당히 잔인한 시기였지요. 이야기는 그런 시대를 반영하는 동시에 향유자들에게 세상의 야만을 경계시키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 이야기들이 물고있는 해피엔딩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지요. 독자는 그를 통해 현실을 잊거나 순응해나갈 명분을 얻어갑니다. 환상적인 요소와 무적 영웅의 출현은 그 서사를 돕지요.
[아저씨]는 그런 영웅의 이야기입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반영웅이겠네요. 국가가 양성한, 완벽한 인간병기였던 '아저씨' 차태식은 정작 자신이 지켜내야 할 중요한 것을 지켜내지 못합니다. 그 업으로 인해 그의 생활은 이리 뒤틀어지고 저리 뒤집히지요. ‘당장’만이 존재하는, 순간순간이 낭떠러지와도 같은 삶. 그 띄엄띄엄 끊어진 일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라곤 그가 지켜내지 못한 대상과의 추억뿐입니다. 이런 그의 삶에, 옆집 아이 소미가 나타납니다. 깊고 질척한 늪 같은 그의 생활에 그 작은 아이는 그나마 작은 파문을 일으키지요. 소미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 한부모 가정의 아이입니다. 나이트클럽 댄서로, 그다지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엄마의 아이에 대한 태도는 거의 방치에 가깝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결손, 가난, 양육자의 무관심. 그것이 한국에서 의미하는 것은 소외 그리고 또래와 또래 부모들에 의한 학대. 이렇게 나이에 당연히 누려야 할 양육과 사랑이 부족한 이 아이는 운영 자체가 의심스러운 초라한 전당포를 운영하며 시장에 진주햄소시지나 휘적휘적 사러나갈 때 빼고는 두문불출하는, 그렇기에 별명이 ‘전당포 귀신’인 아저씨의 쓸쓸함과 고단함에 공명하며 둘의 우정을 주도해 나갑니다. 모든 어린이들은 자고로 영특한 개체들이지요.
주인공 ‘아저씨’의 반영웅적 성격은 이미 클리셰로 굳어져 있는 것입니다. 일본만화 몇몇이 생각나는군요. [바람의 검심]의 켄신, [무한의 주인]의 만지, [베르세르크]의 가츠 등 모두 의당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해 고통받는 인물들입니다. 그렇다면 [아저씨]의 이야기가 어떻게 풀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예측 가능한 일이 되어버리지요 - 속죄할 수 있는, 새로이 지켜야 하는 대상이 나타나고 그 ‘지켜냄’으로 인해 그 가여운 영혼이 구원받을 거라는. 물론 이 ‘구원’은 주인공 영웅이 현실에서의 삶을 이어 나가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구분되는 건 아닙니다. 일례로 [무한의 주인]에서, 영생불사란 굴레로 인해 매번 이곳 저곳 썰리고 잘려도 꿋.꿋.하.게. 벌떡벌떡 살아나가야 하는 비련의 인물 만지에게 참된 구원은 죽음을 통한 안식이 틀림없으니까요.
[아저씨]의 영화로서의 매력은 단순한 대비와 일관성에 있습니다. 악은 동정의 여지없이, 구구절절한 사연없이 순수하게 악하며, 그 악의 각다귀들이 뜯어먹는 영혼들은 아무런 무기도 보호막도 없는 약하고 선한 존재들입니다. 악은 나이트클럽, 대리석 처발처발 터키탕, 돌체 앤 가바나의 밝고 빛나는 세상이며, 선은 누추한 뒷골목, 모자 달린 잠바, 싸구려 손톱 에나멜의 컴컴하고 음습한 세상입니다. 악은 그 탐욕을 반성할 줄 모르며 선은 앞날의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칫 뻔하고 촌스러울 수 있는 이런 보색대비에도 불구, 상영시간을 숨가쁘게 유지해나간 것은 영화가 시종일관 지녀준 일관성에 그 공을 돌려야 할 겁니다. 영화의 높고 낮은 흐름 적재적소에 디테일들이 제자리를 잘 잡고 있더란 이야기지요. 내내 꿀꿀했던 주인공의 표정이나 한쪽 눈을 가린 헤어스타일이 언제 어떻게 변하는지, 소미의 소품들이 만들어내는 알레고리와 리듬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또한 매력적인 주인공의 성장과 구원이 주는 카타르시스, 붉게 튀고 흐르는 피의 시각적 자극, 꽈드득 챙챙 푸슉하는 각종 청각적 자극,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하단 듯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는 것도 장르영화로서 [아저씨]가 갖는 매력입니다. 다만 주인공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마지막 장면에서 수족수축의 요소들을 절제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요... 좀 많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가슴이 아린 것은 그런 아쉬움 때문이 아닙니다. 머리가 굵어진 우리들은 그 연약한 아이들에게 특작부대 출신의 귀신 같은 영웅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후한 사랑을 받지 못했으면서도, 버려진 생활 끝에 이젠 낳아준 어미가 기다리는 집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듬자마자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아이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우리들은 지켜낼 힘도 그 방법도 모르구요. 설사 안다 한들 그 ‘지킴’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가정과 일상을 파괴한다면 어마 뜨거라 쉽사리 손을 놓곤 합니다. 이런 점에서 [아저씨]는 도시의 어둡고 슬픈 동화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손 놓아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지 않게, 우리에게는 영웅은 없지만 국가 시스템이 있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연대하지 못함에 마음 쓰라려 하는 사회는 그 시스템이 엉성하거나 강력하게 지켜지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아저씨]의 소미를 생각해봅니다. 그 끔찍한 범죄와 소외의 문제를 일단 뒤로 두더라도, 끼니를 종종 아저씨 차태식의 집에서 해결하는 등 영화 속에 묘사된 아이의 하루 일과로 보아 소미는 지역아동센터에서도, 급식비 지원을 받아 김밥 줄이나 사먹을 수 있는 급식지원에서도, 식재료나 도시락을 배달 받지도 못하는 먹거리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중 한 명일 것입니다(한겨레21, 2011.12.19. ‘먹거리 약자를 위한 한국은 없다’ 참조). 영화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 영화 속 현실을 실제 세계로 끌어다 놓았을 때 이어지는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형의, 우리에겐 슬픈, 아이에겐 잔인한 동화일 수밖에요.
* 보고나면 영화관의 모든 남자들이 문어 오징어 꼴뚜기로 보인다던데 전 오히려 평범하게 살아가고 계실 확률이 높은 영화관 안의 남자분들은 복되단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평범한’의 비교대상은 절대미모 원빈이 아니라 영화 속 아저씨 차태식의 고생스런 인생입니다.
* 정을 준 어린 것들은 그렇게 가슴이 아린 벱이지여. 미남 조폭 아저씨 보십쎠.
- 2011/12/2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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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어야 마땅하다. 모든 죽음은 쓸쓸하다. 죽음을 맞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몫의 죽음을 홀로 맞아 들여야 한다.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자식들과 배우자와 친구들은 다만 구슬피 울 뿐 감히 죽어가는 사람과 그 사람에게 다가드는 죽음 사이에 끼어들지 못한다. 외로운 죽음은 모든 죽는 사람의 운명이고 죽어야 할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
죽음 은 낯설다. 죽음 너머의 세계는 우리의 감각 기관에 잡히지 않는다. 아무도 외로운 죽음의 순간 너머에 있는 외롭게 맞아야 할 죽음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 종교적 전통들이 죽음이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너무 분분해서 진의를 헤아리기 힘들다. 불교인의 죽음과 기독교인의 죽음과 이슬람교인의 죽음은 각기 다르다. 그래서 불교인이나 기독교인이나 이슬람교인이 아닌 사람은 난감하다. 종교에서 말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기록되어 있을 지언정 경험의 기록이 아니다. 그래서 믿기 힘들다. 결국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
쓸쓸함과 낯섬, 그래서 죽음을 맞이해야 만 하는 운명에 처한 우리가 가엾게도 죽음을 두려워한다. .
그런데 대구 수성구 신매동에 살던 14살의 소년에게는 죽음이 삶보다 포시랍게 느껴졌나 보다. 지난 20일 오전 9시, 소년은 자신이 살던 아파트의 7층 배란다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우리 모두가 두려워 하는 죽음을 평안한 것으로 여겨야 했던 까닭은 A4용지 4장에 적어 두었다. 소년이 고백한 지난 몇달 간의 삶은 낯설고 쓸쓸한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고 외로웠다.
소년은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것 같다. 자살한 소년과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는 우모 군과 서모군은 소년을 무던히도 괴롭혔다. 온라인 게임을 대신해서 레벨을 올리라고 시키고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잔심부름을 수시로 시켰다. 숙제를 대신 시키기도 했고 소년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소년의 부모가 사둔 과자와 음료수를 마음대로 먹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옷을 소년에게 구입하도록 시킨 후 빼앗아 입기도 했다.소년의 참고서와 자습서를 빼앗기도 했다. 행여 소년이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빼앗겨 자신들이 시킨 일을 하지 않을까 우려해서 였다.
소년이 말을 듣지 않으면 가혹하게 때렸던 모양이다. 피아노에 묶어 놓고 칼로 상처를 내려고 했고 몸에 불을 붙이려는 시도도 했다. 전깃줄로 목을 묶어 끌고 다니기도 했다. 때로는 단소와 목검으로 때리기도 했다. 심지어 물고문을 하기도 했다.
소년은 친구들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새벽까지 그 아이들을 위해 게임을 하고 숙제를 했다. 어머니에게 용돈을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새옷을 사주기를 자주 청했다. 그것도 부족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친구들에게 바칠 돈을 대기도 했다.
14살 소년은 외로웠다. 친구들이 무서워서 차마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엄두도 못냈다. 유서에는 소년이 살아서 느꼈던 두려움이 고스란히 묻어 난다.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바꿔주세요. 걔들이 알고 있어서 또 문 열고 저희 집에 들어올지도 몰라요." 소년은 자신이 죽은 후에 14살짜리 반 친구들이 남아 있는 가족들을 괴롭힐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소년은 14살짜리 자신의 친구들이 자신의 엄마와 아빠를 위협할 만큼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맞고 물고문을 당하고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해서 용돈을 타야 하고 밤새워 친구들을 위해 숙제를 하고 게임을 해야 하는 삶은 소년에게 죽음보다 고통스러웠을 게다. 그래서 소년은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피해 낯선 죽음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갔다. 소년에게 죽음은 낯선 희망이었다.
소년은 착했다. 유서에서 소년은 엄마와 아빠에게 용돈을 달라고 떼를 썼던 일, 게임 만하고 공부를 안한 일들에 대해 사과한다. 자신도 강요를 당해서 한 일이 아니였는데도 말이다. 유서의 마지막 몇 문단에는 소년의 선량함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오롯히 담겨 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는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앞에서 밝혔으니 전 이제 여한이 없어요. 저는 원래 제가 진실을 말해서 우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지만 제가 진실을 말해서 억울함과 우리가족 간의 오해와 다툼이 없어진 대신, 제 인생 아니 제 모든 것들을 포기했네요. 더 이상 가족들을 못 본다는 생각에 슬프지만 저는 오히려 그간의 오해가 다 풀려서 후련하기도 해요. 우리가족들, 제가 이제 앞으로 없어도 제 걱정 없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를 빌게요.
저의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저도 분명 행복할 거예요.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우리는 한 곳에서 다시 만날 거예요. 아마도 저는 좋은 곳은 못갈 거 같지만 우리가족들은 꼭 좋은 곳을 갔으면 좋겠네요.
매일 남몰래 울고 제가 한 짓도 아닌데 억울하게 꾸중을 듣고 매일 맞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그리고 제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 저의 가족들이 슬프다면 저도 분명히 슬플 거예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막내 ○○○ 올림-
P.S. 부모님께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 못 전했지만 지금 전할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이상한 이야기지만 우리의 삶과 죽은 사람이 살았던 삶 사이에는 정치가 개입한다. 죽은 사람의 삶과 죽음 사이를 살피는 일은 인문학의 일이겠지만 죽은 사람의 삶이 우리의 삶에 영향력이 있는 무엇이 되게 하는 일은 결국 정치인들이 맡아야 한다. 소년의 죽음을 만들어 낸 삶을 뜯어 보는 일은 지식인들이 하겠지만 그러한 삶을 남아있는 사람들이 살지 않아도 되도록 제도와 법을 마련하는 일은 정치인들의 몫인 것이다.
그런데 소년의 삶에 대해 정치인들은 무관심한 듯 싶다. 한나라당의 황우여 원내 대표가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자살 세계 1위의 불명예를 씻는 것은 현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일일 수 있다"며 "국회 교육과학위원회가 이 문제를 심도있게 검토하고 여성가족위에서도 신경을 써달라"고 언급한 것이 정치권이 소년의 죽음에 대해 보인 반응의 전부였다. 여당에게 "가장 중요한 일일 수 있는 일"은 그저 관련 위원회가 "심도있게 검토하고 신경을 쓰면 되는 일"로 "언급"해두기 만 하면 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민주당이 소년의 죽음에 관해 무슨 말을 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통합 정당의 당권을 놓고 표심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정봉주 전의원의 실형 선고에 매우 분노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은 전해진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이 아니면 무관심하다.
어제는 나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어제의 그저께는 소년이 죽은 날이다. 나는 36살이 되었고 소년은 14살에 죽었다. 소년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소년의 죽음이 우리에게 의미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빈다.
- 2011/12/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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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해서 나는 주식 투자에관해서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다.그렇지만 주식투자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을만나거나 관찰할 기회는 좀 있는 편이다.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일반적인 인상은주식투자 방식도 사람됨이나 경험,배경 지식의 영향이 스며든다는 것이다.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닌 듯 싶다.투자자들 사이에서 우상처럼 생각되는 피터 린치나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같은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의 삶의 경험이나 지식,성격이 투자방식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사람들 중에 알렉산더 엘더 (AlexanderElder)라는 사람이 있다.물론 개인적으로 면식은 없다.다만 매우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경험을 이용해서 나름의 독자적인 투자방식을 고안해낸사람이라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사람이 쓴 책들을찾아 읽는 중이다.
알렉산더 엘더는 뉴욕을 근거지로삼아 전문 주식투자가이자 주식 투자 교육가로 일하고있는 사람이다. 그 계통에서는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그는월가 최고의 기술 투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구 소련의 레닌 그라드에서태어났다. 엘더 자신의주장이 맞는다면 꽤나 조숙한 천재였던 모양이다.그는 16살에 의대에합격했다. 그리고 22살에는의대를 마쳤다. 의대를졸업한 후 엘더는 구소련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수많은 선박들 중 하나에서 선의로 일하게 된다.그런데 22살의 촉망받는의사에게도 구소련의 체제는 견디기 버거웠던 모양이다.엘더는 자신이 일하고 있던 배가 아프리카의 어느항구에 정박했을 때 갑자기 배에서 내려 미국 대사관으로걸어 들어갔다. 망명을신청하기 위해서 였다.
젊은 엘더의 돌발적인 행동은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당혹스럽게 했던 것 같다.대사관 직원들은 치기 어린 젊은 의사를 소비에트연방으로 돌려 보냄으로써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를‘악마의 제국’과의 마찰을 피하려 했던 것 같다.그러나 젊은 엘더는 강력하게 저항했고 결국 미국공무원들은 엘더를 뉴욕행 비행기에 태우게 된다.1974년 2월 케네디공항에 도착한 젊은 앨더는 호주머니에 겨우 25불을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는 낯선 미국에서도 그럭저럭 생존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년동안 병원과 학교와 연구소를 전전하면서 모진생명을 이어가는 동안 엘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점차로 깨달아 갔다.가능한한 많은 양의 화폐를 수집하는 일이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열쇠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만개한 사회에서는 주식에 손을 대는 것이 돈을 모으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생각을 하게 된 듯 싶다. 엘더는 1976년 여름부터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일확천금의 부품꿈을 안고 주식시장에 달려 들어갔다가 한 이년 후에 빌딩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저울질 하게 되는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그는 의사였다. 의사라는 직업은 일종의 과학자다. 과학도로서 그는 매우 신중하게 주식시장에 접근했다. 그는 가능한한 많은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했고 얻은 지식들을 토대로 나름의 가설적인 투자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투자 모델을 수정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지식이 매우 유용했던 것 같다.그는 심리학적 지식을 토대로 독특한 투자 이론을정립한다. 그리고 자신의이론을 몇 번 테스트해서 꽤 많은 수익을 남겼다.
얼마간 주식 시장에서 돈 맛을 본 엘더는 자신이 돈을 벌수 있는 곳이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병원이나 반짝 거리는 화면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주식 시장 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엘더는 주식투자자들을 위한 교육 캠프를 열었다.그리고 책도 몇 권 썼다.우리가 오늘 다루게 될 "Trading for a Living" 이라는, 제목에서 비장미와 삶의 애환이 물씬 묻어나는 책도그 중 하나다. (아래와 같이 생긴 책인데 혹 구입하실 마음이 있는 분들은 참고 하시기 바란다. 한국어 번역판도 시중에 나와 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토대로 씌여졌다: “투자에서승리의 열쇠는 심리학이다.”정신과 전문의로서 당연히 할 법한 소리다.엘더가 수학자였다면 당연히 다음과 같이 주장할것이다: “수학이야 말로모든 투자 결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다.” 정치나 경제학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은아마도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다:“경제 정책에 따라 달라지는 거시 경제의 흐름을읽는 것이야 말로 투자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대부분 경험의 아들들이다.자신의 경험의 한계에서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그것 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기도 하다.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말하는 것들을 이성적으로 검증하고 좋은 부분,타당한 부분들을 찾아 내서 활용하고 자신의경험으로 삼을 줄도 안다. 우리는이성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개인적인 경험의 타성을끊고 더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책을 읽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우리가 엘더의 주장을 들을 때 우리는 우리의이성을 예민하게 작동시키면서 그의 생각이 어느정도까지 옳은지를 살펴서 옳은 부분만을 우리 것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엘더가 ‘투자에서 승리의열쇠는 심리학이다’라고 마치 자신이 있다는 듯이말하는 이유를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엘더는 주식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투자가들의감정, 심리상태라고생각한다. 주식 시장을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대중의 심리다.대중은 객관적인 데이터보다는 불안감과 흥분같은 것에 더 영향을 진하게 받는다.이 점에서는 투자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조지소로스의 의견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주식의 가격은 대중의 근거 없는 희망이 만든다.덧없는 희망의 노도를 타고 미친듯이 상승하던주가는 대중이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면 날개가 없는것처럼 추락한다. 이런 과정은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데 이것에 착안한투자법이 그 유명한 소로스의 재귀적 투자다.
아무튼 우리의 엘더 선생이주장하는 바가 맞다면 주식 시장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하면서 대중의 감정이널뛰기하는 장면을 냉철하게 분석하면 되는 거다.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투자가들에게는 대략 4가지 소양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투자가는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냉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들의투자 심리를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그런데 투자가의 심리를 읽어 내기 위해서는자료가 필요하다. 주식시장에서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상태를 읽어 내는 데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자료는 지표다.따라서 지표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도 투자가에게는필요하다. 요즈음에는시장의 지표들을 인터넷과 컴퓨터를 통해서 얻을 수있다. 그러니까 인터넷과컴퓨터를 이용해서 지표를 얻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투자는 기본적으로 돈을 가지고 한다.따라서 자신의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있다면 투자에서 유리한 입지를 가지게 된다. 우리의 엘더 박사님께서는 이 책을 통해서 바로이런 것들에 관해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다.
이 즈음되면 우리는 이 책의구조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엘더는 자신의 책을 10개부분으로 나누어 두셨다. 첫번째장은 투자가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에 관해서설명한다. 두번째 장은주식 시장에 참여한 대중들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관해서이야기한다. 세번 째 장부터여덟번 째 장까지는 주식 시장의 각종 지표들을 가지고어떻게 대중의 심리를 읽어 낼 수 있는 지에 관해서단계적으로 설명한다. 아홉번째 장은 주식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가들이 사용할수 있는 효율적인 컴퓨터 시스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데,사실 이 부분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왜냐하면 이 책이 쓰여진 1993년이래 투자자들을 위한 컴퓨터 시스템과 홈 트레이드소프트 웨어는 끊임없이 발전해왔기 때문이다.마지막 장은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신의자산을 어떻게 관리하면서 투자하는 것이 좋은지에관한 제안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명한 정신과의사이자 전문 투자가이신 엘더 박사님의 주장들을하나, 하나 점검해볼 필요가있다. 사실 이해와 검증없는 책읽기는 아무것도 읽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시간 낭비다.
그런데 이 책을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나중에 하는 것이 좋겠다. 앞으로 2000단어 즈음을 더 써야 하는데 그러면 글이 너무 길어 진다. 다음에 이 책의 세부적인 내용을 조금 정리하고 난 후에 장점과 단점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 2011/12/2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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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이에게. [클릭하시면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아픈 기억들은 침대 속에서도 날 괴롭히고
날 용서 못하는 나로 다시 아파해야만 했다.
부딪는 오늘은 나를 향해서만 굳게 잠겨있고
날 믿어 주는 너에게 다만 미안하다 할 뿐 할 말이 없다.
다친 마음을 쉬게 해줄 나무는
지친 날개로 가기에는 벅찬 듯
여전히 어린 나는 무겁고
오늘은 여린 내게 힘들어
옛 삶과 화해하고 있는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오늘을 마주보고 가림 없는 마음 그대로 살아가야 하지
병든 영혼에 스며드는 대지는
좀더 느리게 자라가는 내 열매
여전히 어린 나는 몰라도
내일은 깃털처럼 가벼워
옛 삶과 화해하고 있는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오늘을 마주보고 가림없는 마음 그대로 살아가야하지
- 작사, 작곡 이지음
아이가 아이에게. 제 트위터 친구분이자 싱어송라이터인 zeze(@_ze9, 이지음) 님의, 유려하게 흘러가는 기타선율이 유난히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서 목을 놓아 불러보는 금순이마냥 굳센 어른으로 살아간다지만, 우리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곳입니다. 만만하며 버틸 만 하다가도 두려움에 떨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오가고 관계에 얽히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다 주저앉기도 하고 안팎의 크고 작은 욕망에 휩쓸리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잘되면 잘되는 대로 못되면 못되는 대로 우리는 자신을 거쳐간 시간의 흔적을 안게 됩니다. 잔주름, 자족적인 성장, 새치머리, 금전적 손해, 갖고 싶던 물건들, 이어진 인연, 끊어진 관계 등. 그 흔적이 어떤 형태의 어떤 모습을 갖고 있든 문득 느끼는 내 모습은 아이처럼 철없고 겁 많은 누군가지요. 그 누군가는 다시 내 안의 기억 속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아이와 이야기합니다. 내가 생각한 세상은 이런 게 아니야. 이런 식으로 똑같이 상처입고 싶지 않아. 어린 아이의 찬란한 미래인 지금의 나이든 아이는 너무 찌질해. 심하게 후져. 그럴 줄 알았어 넌 결국 그렇지.
대학교 2학년 때의 이야기를 꺼내보겠습니다. 개강한지 얼마 되지 않은 화창한 봄날.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그냥 저도 ‘땡땡이’란 걸 한 번 쳐보자는 거였습니다. 화장을 하고 가진 것 중 가장 예쁜 옷을 입고 머리를 세팅롤로 굽실굽실하게 해서 전공책 몇 권을 들고 나와서 간 곳은 지하의, 조명이 나빴던 눅눅한 만화방이었어요. 문종이를 바른 미닫이문 뒤로 주인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고 손님 중 여자는 저밖에 없었지요. 주로 남자 손님들이 무협지를 보고 있었죠. 오전에 나와서 서른 권 정도 되는 순정만화를 다 읽고 나니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를 걸으며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켜지는 것을 한참 바라보다 집에 오니 늦은 밤이었지요.
그 다음 날도 학교를 가지 않고 비슷하게 일정을 보냈어요. 하루쯤 더 개기는 것이야 어떨까 해서요. 열심히 노력해서 들어간 원하던 대학의 원하던 과였고 공부도 그럭저럭 재미있었어요.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절 좋아해준 동기도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선배도 있었지요. 그런 평범한 ‘나’니까 하루쯤 더 자기 자리에 가지 않고 세상에 처진다고 해서 뭐 크게 손해볼 것이 있겠냐 한 거죠. 그렇게,
한 학기가 흘렀어요. 놀랍게도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루도 학교에 가지 않고 한 학기를 어두운 만화방과 거리에서 보냈다는 것을 깨달은 건, 그것도 문득 깨달은 건, 기말고사 대신 레포트를 쓰면 학점을 줄테니 제발 레포트를 제출하라는, 그리고 제출하러 온 김에 상담을 받으라는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였어요. 전 레포트를 내지 않았고 교수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 전화를 하셨습니다만, 전 건성으로 네, 네 하고는 학교를 찾아가지 않았어요. 학기를 유급하고, 친구들을 잃었고, 이후의 대학생활을 결국 적응하지 못한 채 근근히 졸업만 했지요. 그 중간에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절 학대하고 이용했습니다. 상대가 저를 별로 좋아하지도 아껴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저라도 ‘사랑해준다니까’ 고스란히 받아들였죠. 그나마 그게 제 20대가 그나마 쥐고 있던 전부였으니까요.
시간이 지나 또 한 번의 수렁이 찾아왔지만 이제는 만화방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겐 책임질 귀여운 아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만화방 대신 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각종 검사를 하고, 정신만큼 신체의 기능이 떨어져 있음을 확인하고, 보완하고 상쇄하는 약을 먹으며 과거를 조금씩 생각해냈어요. 아무 것도 아니고 그냥 게으르게 보냈다고 생각한 대학교 때의 그 시간이 사실은 엄청나게 어두운 터널이었다는 것을. 복잡한 가정사, 냉정한 부모, 세상에 홀로 고립되고 유폐되었다는 지나치게 자기애 강한 마음 속 조그만 여자아이가 불러들인 각종 열등감과 모멸감, 쓸모 없고 못나빠져 결국 나를 버린 후 쳐넣은 터널 속. 그리고 그 터널 밖에서 들려오던 소리들이 의식 위로 올랐습니다, 걱정해준 친구들, 선배들, 학생 여기 왜 자꾸 오냐고, 공부 안 하냐고 엄마처럼 살갑게 굴며 라면으로 점심을 챙겨준 만화방 아주머니, 같이 소주잔을 기울여주신 손님 아저씨들, 끝까지 절 포기하지 않고 2주간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해주신 교수님.
예전에 한 고등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사인은 성적비관. 그러냐고. 그렇게 살아있는 사람들 마음에 못을 박고 떠났겠구나, 하고 처음엔 생각했죠. 그러다가 그 아이가 일전에 연등행사를 하면서(아이가 다니던 학교가 불교계 학교라 연등에 소원 적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더군요) 자신의 연등에 ‘단명’이란 말을 적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는 몇 년째 제 마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각합니다, 지금의 나이든 아이일 뿐인 저와 대학교 2학년 때의 저, 유년기의 어린 저와 고등학생으로 지상의 경력을 마친 그 아이에 대해. 우린 그냥 아팠던 것뿐이었다고. 주위의 도움과 치료가 필요했지만 그 손길이 오질 못했거나, 왔다고 해도 결국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라고. 여전히 사람을 피하고 벽부터 쌓아대는 히키코모리 성향 농후한 아줌마인 지금의 저라도, 제가 지켜줘야 할 사람들이 있고 그런 절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일상이란 칼날에 쉽게 베이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 힘을 가진 저이니, 이런 머릿속에서 일어난 잠깐의 상상 조각들이 조금은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울다 웃다 하는 거지요. 아이가 아이에게 말을 걸며 “옛 삶과 화해하고 있는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지요. “오늘을 마주보고 가림 없는 마음 그대로 살아가”고 싶은 거지요.
- 2011/12/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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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말기의 레임덕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는 모양이다. 뉴스에 의하면 한나라당의 내부에서 재창당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의 단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쇄신파 의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한다 (동아일보,與, 재창당 통한 ‘MB 단절론’ 부상, 2011-12-12 22). 일부 친 MB파 의원들까지 쇄신파의 요구에 가세하고 있단다(동아일보,친이 일각 “MB 버리자”, 2011-12-13). 심지어 친MB계열로 분류되는 의원들 중에서는 쇄신파 의원들보다 더 나아간 주장을 하는 분들도 있는 모양이다.
친이(친이명박)계 권영진 의원은 “대통령의 탈당이 어찌보면 당연하고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권 의원은 12일 한 라디오에 출연, 당의 재창당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새로운 당에 입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탈당하는 것에 대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으며 고려대 후배이기도 하다 (한국경제, MB측근 권영진 "대통령 탈당해야",2011-12-12)
야나치다! 그런데 우리의 과거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여당에서 임기 말의 대통령을 추출하는 일은 거의 전통이 되어 있는 사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쇄신파 의원들과 '일부' 친 MB파 의원들은 지금 한국 현대사의 대모한 전통을 계승하려고 노력하고 계시는 것이다. 야박하다고 비난할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87년 이후에 집권한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임기 말에는 대체로 자신의 당으로부터 배척받곤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2년 9월 18일에 당시 집권당이자 현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주 자유당을 탈당한다. 대선에서 중립을 지키려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고뇌가 반영된 결과였다. 이 즈음되면 우리는 노태우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정에 기립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런데 벅차오르는 감동을 조금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탈당의 이유를 살펴보면 노태우 대통령의 탈당은 그리 감동적이거나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노태우 대통령은 당시 김영삼 민주 자유당 대표와의 갈등을 견디지 못해서 탈당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강의 앞물결은 뒷물결에 밀리는 법. 노태우 대통령을 탈당시킨 김영삼 대통령 역시 임기 말에 탈당계를 재출해야 했다. 당시 민주 자유당을 모태로 삼고 있으면서 현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총재였던 이회창씨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외환 위기의 책임이 있는 터에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인제씨를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던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11월 8일 탈당계를 재출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역사가 개인을 위해 복수의 주먹을 든 희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임기 말 대통령의 탈당 사태는 보수 정당의 전유물 만은 아니였다. 김영삼 대통령에 이어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5월 6일, 자신의 손으로 만든 민주당을 탈당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 홍걸, 홍업씨의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게 된 민주당에서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2월 22일 열린 우리당의 당적을 포기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열린 우리당 의원들 중의 일부 의원들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문제에 대해 더 이상 관여하지 말고 외교, 안보에만 전념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 후에 이들 의원들은 정동영, 김근태 의원의 주도하예 "희망 21", "국민의 길", "안개모" "실사구시" 등의 당내 모임을 규합해서 통합신당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를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탈당한다.
표면적으로 역대 대통령들의 탈당 이유는 대동 소이하다. 지지율이 탈당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어 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탈당 -실질적인 출당-위기 몰린 이유도 비슷하다. 그 동안 강력하게 밀어 붙은 MB노믹스는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불도저식 리더쉽은 수평적 대화의 리더쉽을 기대하는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친인척, 측근들의 비리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당의 지지기반은 붕괴 직전까지 오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역대 대통령들의 출당에는 다른 동기가 숨어 있다. 정치인들의 비겁함과 약사빠름과 치사함과 권력과 기득권에 대한 집착 같은 부정적인 말들로 표현될 수 밖에 없는 어떤 숨은 동기가 대통령 탈당의 도도한 전통의 밑면에 놓여 있다.
안철수 교수가 서울 특별 시장 선거에 출마할 의사를 보였을 때 대중들은 환호했다. 그러자 기성 정치권에 포진해있던 유명인사들은 여, 야를 막론하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책임 정당제도다. 안철수 교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짓이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입당해야 한다." 여야 정치인들이 이렇게 까지 논쟁없이 합의에 도달하는 순간은 매우 드물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세비 인상이나 퇴직 국회의원에 대한 연금제도 정도의 아주 극소수의 사안에서 만 여,야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합의가 돌출되었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근간이 책임 정당 정치 제도라는 신념을 가진 정치인들과 그들의 정당들은 실제로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에는 희생자를 하나 만들어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해왔다.
앞서 죽 언급한 대통령들의 임기말 탈당 도미노 사태가 그것을 보여준다. 집권당이 인기가 하락하면 그 책임을 모두 대통령에게 뒤집어 씌우고 꼬리를 잘라버림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작태가 대통령 축출이었다.
집권 여당이 왜 집권 여당인가? 집권해서 국정 운영의 정치적 책임을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국정 운영에서 결정적인 선택권은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집권 여당은 대통령과 함께 그리고 대통령을 통해서 국가 운영에 개입한다. 대통령에게 정책적 대안을 제시한다. 조직을 통해서 대중의 여론과 대통령 사이를 매개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차출하는 곳도 기본적으로 고려대가 아니라 집권당 인재풀이어야 한는 것이 상식이다. 집권 여당은 입법활동과 예산 심의를 통해서 대통령을 지원한다. 국정 감사 때는 대통령의 정책이 야당의 공격에 의해 흔들리지 않도록 방어도 한다. 덕분에 집권당에 소속된 정치인들은 상당한 권력과 권위를 누린다. 결국 집권당은 대통령과 책임과 권력을 나누는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관계 설정 방식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동반자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들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대체로 집권당의 정치인들은 지는 권력인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 씌우고 제거한다. 그리고 당명을 살짝 바꾼다. 당사도 이전한다. 당사의 집기도 새로 바꾼다. 이런 절차가 끝나면 뻔뻔스럽게도 자신들은 비록 집권 여당의 멍에를 뒤집어 쓰고 있으나 현재 집권자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현재 집권자의 실정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지지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인간적으로 야비하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로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거다.
나는 대한 민국의 집권당들이 더 이상 대통령을 축출하거나 당명을 바꾸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한번이라도 우리 정당과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집권당이 지지율이 떨어진다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 자신들의 과오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개발해서 국민들에게 제시하면 된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한번 기회를 줄 것을 호소하면 된다. 만약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책을 오해해서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해명하면 된다. 그리고 국민의 재신임을 물으면 된다.
만약 국민들이 과오를 스스로 바로 잡을 기회를 주지 않거나 재신임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국민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해서 다음에 집권하면 된다. 자고로 이런 정당들이 많아져야 '책임 정당 정치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라는 주장이 실제로 구현되는 거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은 출당당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책임정당으로써의 길을 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총선과 대선에서의 패배이든 재집권이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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